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두 칸 (문단 편집) == [[원나라]]와의 대립 == 1264년 8월 툴루이 내전에서 [[아리크부카]]가 패배하고, 쿠빌라이가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이 되자 평소 카이두를 탐탁치 않아 했던 쿠빌라이는 카이두를 제거하기 위해 [[상도]]로 소환했으나 [[오고타이 칸국|우구데이 울루스]]의 말들이 늙고 병들었다는 핑계로 거부했다. 카이두는 1266년 아리크부카가 사망하자 그의 계승자임을 선언하고, [[킵차크 칸국]]과 [[차가타이 칸국]], [[일 칸국]] 등에 지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며[* 그러나 일 칸국은 카이두와 쿠빌라이 간의 내전에서 쿠빌라이의 편을 들었다] 몽골 왕공족들의 지지를 얻어, 1269년 [[차가타이 칸국]]의 바락을 물리친 후 대칸을 선언했다. 쿠빌라이는 넷째 아들 노무간으로 하여금 카이두를 공격하게 했는데, 여기에는 몽케 칸의 아들 시리기, 아리크부카의 아들 요부쿠르 및 멜릭 테무르가 있었다. 1276년 세 왕자가 진중[* 군대나 부대의 안.] 반란을 일으켜 노무간을 킵차크 칸국에 넘겨버리고, 자신들은 카이두에게 의탁했다. 그리고 이 왕자들 사이에 차가타이 칸의 차남 사르반도 합류하게 되었다. 이 왕자들과 킵차크 칸국, 카이두가 반(反) 쿠빌라이 전선을 구축하고, [[원나라]]의 수도 [[카라코룸]]으로 진격했고, 쿠빌라이는 명장 [[바린 바얀]]으로 하여금 이 진격을 막아내게 했다.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나라를 괴롭혔다. 하지만 번번히 [[바린 바얀]]의 방어에 막혔고, 쿠빌라이 사후에는 오히려 본인 진중에 있었던 세력들이 이탈해 감에 따라 세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. 그래도 원나라 공격을 멈추지 않아서 1298년에는 [[성종(원)|원 성종]] 테무르 칸의 사위('쿠르겐')였던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